가이포크스는 현재 많은 반정부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는 저항의 아이콘이다.
그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그의 얼굴을
상징하는 가면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가이포크스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화약음모사건에 대해 다루지 않을수 없다.
과연 그가 원했던건 무엇이었으며,
그 결과 정작 당사자인 영국 국민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1. 가이포크스 화약음모사건 계기
당시 그러니깐 1605년 영국에서는 지금처럼
카톨릭이 인정받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 왕이었던 제임스 1세는
영국 성공회의 수장으로
카톨릭 신자들을 박해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군인이자 절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가이 포크스는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서
자신의 종교를 박해하는 제임스 1세는 물론
영국의회를 전복시키기 위해 의회 의사당을
폭파시키기로 결심하게 된다.
2. 내부에 적이 있다.
함께 거사를 도모한 인물은 총 5명으로
토머스 윈터 , 토머스 퍼시 , 존라이트,
로버트 케이츠비
그리고 가이 포크스 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각자 역할을 맡아
웨스트 민스터 사원 지하실을 임대하고
그곳에 무려 화약 20배럴을 채워넣고
거사날인 11월 5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제임스 1세 뿐만 아닌
의회 주요인사들이
전원참석하기로 되어있어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공모자 중 한명이 친척에게 이 사실을
귀뜸한것이 계기가 되어 가이 포크스가
체포되어 그들의 계획은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3. 그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가이 포크스는 체포후 주동자를 색출하려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동지들의 이름을 말해버린다.
이로 인해 나머지 가담자들이 죽음을 맞고,
가이 포크스 역시 목이 메달려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면 가이포크스가 내세운것은 무엇이었나?
지금이 반정부시위처럼
민주주의를 위해서였을까?
그는 단지 종교적인 동기였을뿐이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체포후 의연하게
죽음을 기다린 순교자 역시 아니었다.
4. 가이포크스의 밤 의미
매년 11월 5일이 오면
가이포크스의 밤이라고 해서
당시 가이포크스가 미수에 그쳤던
화약음모사건에서 제임스 1세와 의사당이
무사했음을 축하하는 의미로
'가이 포크스 인형'을 만들고 거리에서
태우는 행사를 한다고 한다.
즉 가이 포크스는 영국에서
저항의 아이콘이기 보단
테러리스트에 가깝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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