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 22일 3발의 총성과 함께
미국 제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배후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의혹이 제기 되고 있는데...
케네디 암살에 지목되는 배후들
케네디 암살 의혹에 관련되는 단체에는 꽤나
많은 곳이 지목되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케네디가 죽음으로써
이득을 보는 단체가 꽤 많았다는 뜻이다.
자신의 국민들을 위해 내린 결정들이
어떤 세력들에게는 잃는것이 많았을테지.
그럼 어떤 단체들이 케네디 암살에 배후로
지목되는지 한번 간단하게 알아보자.
케네디 암살 : 마피아 개입설
잘 알려진 대로 케네디의 아버지인 조셉 케네디는
마피아와의 협력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리고 그 재산으로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만 43세에 불과했던 케네디가
부통령인 리처드 닉슨을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겠는가?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난후 케네디는
동생 로버트 케네디와 함께 마피아 척결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고,
이에 마피아가 앙심을 품고 케네디 암살을
주도 했다는 설이 첫번째 이다.
케네디 암살 : 쿠바 침공 계획 무산
D-13 이라는 영화를 보면 쿠바 미사일 사건이
얼마나 긴박하게 흘러갔었는지 알수 있다.
1962년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소련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간의 팽팽한
힘의 대결로 실제 핵전쟁 직전까지 갈수 있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소련과의 협상을 이끌어냈고,
다행히 미국과 소련과의 충돌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 C.I.A 와 일부 군 장성들은
강력하게 전쟁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쿠바 침공계획 무산은 1962년
케네디 암살은 1963년에 일어났다.
케네디 암살 : 베트남 전쟁철수
케네디가 집권하던 시기에는 참 많은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는데,
베트남 전쟁 역시 그중 하나였다.
만약 케네디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이듬해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하게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미 장성들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됐을
확률이 크지만,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케네디가 베트남전을 반대한다면,
군수업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군관계자들과 정치인들은 위기를 느꼈을것이다.
케네디 암살 : 화폐개혁
미 연방 준비은행 (FRB)은 미국화폐를 만드는
한국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미국 정부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1963년에 미국 정부가
화폐발행권을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는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국제금융재벌의 생사가 걸린 일이었다.
케네디 암살 : 부통령 린든존슨
전통적으로 텍사스는 군수업체가 밀집한
지역으로 그 지역 정치인은 필연적으로
군수업자들에게 정치자금을 받게 된다.
케네디는 전쟁을 싫어했지만,
군수업체들은 전쟁이 있어야 살수있다.
이런 이유로 린든존슨과 케네디 사이에는
알수 없는 의견충돌이 많지 않았을까?
실제로 케네디가 암살당한 후 케네디의
죽음을 슬퍼하는 그의 부인 재클린을
옆에 세워놓고 린든존슨은 대통령 선서를 했다.
린든존슨은 무엇이 그리도 급했길래
케네디 암살 몇시간 뒤에 기다렸다는듯이
36대 대통령이 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케네디 암살 50년이 지났지만...
이런 의혹들이 무성하게 남아있지만
제대로 밝혀진것은 단 하나도 없다.
케네디 암살을 목격했던 목격자
18명이 의문사를 당하는가 하면,
케네디 암살 주범으로 지목된 오스왈드 역시
잭루비 라는 자의 손에 죽고,
그 잭루비 역시 교도소에서 사망한다.
그 무엇이 그들은 두려웠던 것일까?
- 케네디 암살에 대해 좀더 자세히 다뤄보겠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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