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차별은 비단 고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왜 하필 의종때 무신정변이 일어났는지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무신정변 발생원인
기본적으로 문신과 무신은 맡은 역할이
달라서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문신은 정 1품 문하시중까지 오를수 있었고,
무신은 정 3품 상장군이 한계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제 전투에서
문신이 총사령관직을 맡고,
무신이 그 명령을 따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던 시기가 바로 이시기이다.
고려의 유명한 귀주대첩 강감찬 장군이나
윤관 같은 장군들 역시 문신 신분으로
전장에서 총사령관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문무차별에 의한 불만
문무차별은 사실 고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웃나라인 중국의 역사에서도 문신들이
왕의 총애를 받으며 실권을 장악하고
무신들은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워도 높은관직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 왜 유독 이시기에 무신정변이 일어났을까?
이 당시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겪으며
그에 가담했던 많은 무신들이 숙청되면서
무신들의 힘은 크게 약화되었고,
더욱더 문신들은 무신들을 견제하게 되었다.
정중부 수염방화 사건
무신들이 얼마나 무시를 당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무신정변의 수장이었던 정중부가 젊은시절,
그는 용모도 출중할뿐 아니라,
흡사 삼국지 관우운장을 연상시킬정도의
멋진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남자들 사이에서는 수염이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는데,
수염이라는것이 타고나는것이라
어떤사람은 관우처럼 멋진 수염이 나고,
어떤사람은 흡사 내시처럼 듬성듬성 나는법.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보고
무장따위에 어울리지 않는 수염이라며
촛불로 수염을 태워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정중부 김돈중의 멱살을 잡다 !
소중히 길러온 수염을 잃은 정중부는
김돈중의 멱살을 잡게 되는데,
그후 김부식은 무장따위가 문관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정중부를 좌천시키게 되고,
이 일은 아마 정중부와 무신들 사이에서는
정말 굴욕적인 사건이었을것이다.
한뢰의 싸다구 사건
한뢰의 싸다구 사건은 이후 벌어질
참상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된다.
당시 왕인 의종은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며 풍류를 즐기길 좋아했는데,
그때면 어김없이 무신들이 호위를
하며 갖은 고생을 하게 되었지만,
낮은 처우에 불만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춘천 보현원으로 가던중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수박 경기를 벌였는데,
당시 나이가 많던 이소응이라는 무관과
젊은 무관과의 수박경기가 진행됐다.
아무리 이소응이 젊은시절 날렸다지만
젊은사람과 격투기를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
결국 이소응이 포기하고 왕에게 다가가는데,
그때 문관 한뢰라는 자가 이소응을 꾸짖고
뺨을 때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이소응은 종 3품이었고,
뺨을 때린 한뢰는 종 5품.
허허 ~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어딨을까 ㅋ
거기에 왕과 문신들은 그장면을 보고
껄껄 웃고 자빠졌으니,
무신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결국 수염사건의 정중부가 앞장서서
문신들을 제거하기로 한다.
무신정변의 결과
수박경기가 끝나고 목적지인 보현원에
이르자 무신들은 그동안의 설움을
한순간에 폭발시켜버렸다.
문관의 관을 쓰고 있는 자는 닥치는대로
제거해버리고 싸다구 사건 한뢰는
재빨리 피해 의종에게 살려달라 애원했지만,
무신들은 한뢰를 단칼에 제거해버린다.
이로써 돌아올수없는 강을 건너버린 무신들은
의종을 폐하고 그의 동생인
명종을 옹립하고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3분 역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적의 난 간단정리 (0) | 2016.07.16 |
---|---|
귀주대첩 3분정리 (0) | 2016.06.30 |
척준경 그는 누구인가? (0) | 2016.06.22 |
묘청의 난 3분정리 (2) | 2016.06.15 |
이자겸의 난 간단정리 (2) | 2016.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