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리섬 전투가 기네스북에 오른 이유?
기네스북 에 등재된 전투라 ...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길래
기네스북 에 까지 이름을 올렸을까요?
사실 이 전투는 치열했기때문에
기네스북에 오른것이 아닌
다소 황당한 상황때문이었는데요
이름하여 람리섬 전투라고 불리는
이 전투가 왜 기네스북에 올랐는지
같이 기록을 따라 가보도록 하죠 ~
때는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인 1945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안마의 람리섬이라는 곳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람리섬 탈환을 위해
영국군과 인도군이 연합해 람리선에
상륙하면서 시작합니다
기네스북에 오른 이 사건 당시
일본군의 위세는 땅에 떨어진 상태였지만
영국이 주도한 연합군의 기세는 드높았죠
1945년 8월이 오기 6달전 이니깐
이해가 되시죠?
결국 일본군은 연합군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본진과의 합류를 위해 후퇴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다급히 철수를 하던 일본군을
기다리는건 무려 15km나 이어저있는
맹그로브 숲과 늪지대 였습니다.
일본군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강제로 끌려온
군인들이 늪지대에 익숙할리 만무했지요..
참고로 일본이 패망하기전 여러 전선에는
강제 징용된 한국인을 포함한 여러
아시아인들이 여기에 포함되어있었습니다..
허리까지 오는 늪지대를 헤치며 행군하던 중
밤이 찾아왔지만 그들은 멈출수가 없었지요
일본군 본대와의 합류를 막기위해
연합군이 맹렬히 뒤쫓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러던 중 한 병사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리자 연합군이 따라온거라 판단한
일본군은 총을 쏴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닌
맹그로브에 서식하는
바다악어였습니다 !
다 자란 몸이 무려 7m에 이르고
몸무게는 2톤까지도 나간다는 바다악어.
수백마리의 악어가 사는 지역임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죠.
그때부터 피의 향연이
밤새도록 펼쳐졌습니다.
깜깜한 밤중인데다 물속에서 일본군이
할수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더군다가 물은 악어들이 가장
유리한 곳이기도 하고요.
뒤를 쫓던 연합군도 알수 없는 비명소리에
추격을 멈추고 지원사격 정도만
했다고 기록에 나와있습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새벽녘이 밝아왔습니다.
연합군 눈앞에 펼쳐진것은
살아있는 지옥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악어들이 먹다남긴 시체들과
그 잔해를 먹기 위해 몰려든 독수리 떼..
사실 기네스북 에 올라있는 내용은
동물에 의한 가장 큰 재앙 이라는
목록에 올라있다고 합니다.
당시 1000명 가량의 일본군 중에서
500명은 탈출했으며 20명은 생포했지만
나머지 400명의 일본군이 악어밥이
된 이사건은 기네스북 중에서
가장 잔인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일본군이 당했다는 사실에
한국인으로써 고소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는 강제징용당한 한국인도
있었기에 마냥 기뻐할수만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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